중요) 저는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고구려 안악 3호분은 왕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써봅니다.
첫째로 무덤 주인의 머리에는 백라관(白羅冠)을 썼습니다. 아무리 높은 관리라 해도 국왕(國王)이 쓰는 백라관(白羅冠)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 중앙에 있는 인물과 수레에 탄 인물이 동일인물이라고 봅니다.
둘째로 손에 쥐고 있는 부채가 같습니다. 고로 수레에 탄 인물과 묘주의 인물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셋째로 성상번(聖上幡)입니다. 국왕에게 사용될 수 있는 존칭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넷째로 장하독(帳下督)의 직책의 그림은 무덤 위치에서 신하의 자리에 있다고 봅니다. 즉 수문장 역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찌 되었던 안악 3호분은 왕릉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고 미천왕인지 고국원왕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는 없습니다.
<동수에 관한 내용>
"▨永和十三年十月戊子朔卄六日
癸丑使持節都督諸軍事
平東將軍護撫夷校尉樂浪
相昌黎玄菟帶方太守都
鄕侯幽州遼東平郭
都鄕敬上里冬壽字
▨安年六十九薨官"
영화 13년, 무자일(戊子)인 10월 26일 초하루 계축(癸丑)에 사지절 도독제군사 평동장군 호무이교위 낙랑상 창려, 현도,대방태수 도향후 유주 요동 평곽현 도향 경상리 출신의 자는 "▨안"인 동수가 69세의 나이로 벼슬하다 죽었다.
"동수(冬壽)는 69세에 벼슬하다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이 글귀가 안악 3호분의 주인이 동수가 아님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동수(冬壽)는평생을 왕이 아닌 왕의 신하(臣下)로써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동수는 백라관(白羅冠)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수 없는 조건입니다. 또한 성상(聖上)이라는 호칭도 받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장하독에 있는 묵서명은 묘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수(冬壽)라는 신하에 대해서 기록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아마도 동수(冬壽)라는 인물이 묘주에게는 특별한 신하였기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묵서를 작성한 사람은 동수가 아닌 제3의 인물입니다.
제삼자에 의해서 묵서가 적힌 것이므로 무덤은 357년 전에 미리 만들어졌고 동수가 357년에 죽자 제삼자가 왕의 무덤에 들어가서 묵서명을 작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고국원왕의 사후에 무덤이 완성되었고 동수는 특별한 신하여서 무덤에 기록이 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정리>
블로그 쥔장은 안악 3호분은 "왕릉"이라고 추측되고 북한 학자들은 "왕릉"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일부 남한 학자도 "왕릉"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계시기에 저는 왕릉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편에 서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학자 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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